햄, 소시지, 김치, 라면 사리가 한 냄비에서 끓는 부대찌개는 재료 목록만 보면 아무렇게나 끓여도 될 것 같지만, 전문점 국물과 집 국물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갈리는 지점은 육수와 빈스, 딱 두 가지입니다.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직후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미군 부대 주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에 김치와 고추장을 더해 끓여 먹던 데서 시작된 음식입니다. 처음에는 찌개보다 솥뚜껑에 가공육을 볶아 먹는 구이에 가까웠는데, 느끼함을 잡으려 김치와 육수를 붓고 끓이면서 지금의 얼큰한 전골 형태가 됐습니다.
의정부식과 송탄식
부대찌개를 좀 먹어본 사람들은 의정부파와 송탄파로 나뉩니다. 의정부식은 육수를 그때그때 부어가며 끓이는 맑고 개운한 쪽으로, 김치의 산미가 살아 있고 국물이 비교적 가볍습니다. 송탄식은 치즈와 다진 고기, 소시지를 아끼지 않고 넣어 국물이 뽀얗고 진득한 쪽입니다. 아래 레시피는 사골 육수에 치즈를 올리는, 굳이 따지면 송탄 쪽에 가까운 절충안입니다. 개운한 게 좋으면 치즈와 빈스를 빼고 김칫국물을 더 넣으면 의정부식 방향이 됩니다.
재료 (2~3인분)
- 통조림 햄 작은 것 1캔, 비엔나 또는 후랑크 소시지 2~3개
- 잘 익은 신김치 1컵, 두부 반 모, 대파 1대, 양파 반 개
- 베이크드 빈스 2큰술
- 시판 사골 육수 500ml + 물 200~300ml
- 라면 사리 1개, 슬라이스 체다치즈 1장
- 양념: 고춧가루 2큰술, 고추장 1큰술, 국간장 1큰술, 진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맛술 1큰술, 후추 약간
조리 순서
- 양념 재료를 미리 섞어둡니다. 시간이 있으면 잠시 두었다 쓰면 맛이 어우러집니다.
- 햄과 소시지는 먹기 좋게, 두부와 양파는 도톰하게, 대파는 어슷하게 썰고 신김치는 속을 가볍게 털어 썹니다.
- 전골냄비 바닥에 양파와 대파를 깔고 그 위에 햄, 소시지, 두부, 김치를 돌려 담습니다.
- 가운데에 빈스와 양념을 올리고 사골 육수와 물을 부어 센 불에서 끓입니다.
- 국물이 우러나면 라면 사리를 넣고, 면이 거의 익었을 때 불을 끈 뒤 치즈 한 장을 올려 잔열로 녹입니다. 면을 다 익히고 불을 끄면 상에 올리는 사이 불어버립니다.
국물이 갈리는 두 가지
맹물 대신 사골 육수를 쓰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가공육만으로는 국물에 바디가 안 생기는데 사골 육수가 그 바닥을 깔아줍니다. 두 번째는 베이크드 빈스로, 콩의 은근한 단맛이 매운 국물을 둥글게 잡아줍니다. 처음엔 저도 "콩 통조림을 찌개에 왜 넣나" 싶어 뺐다가, 넣고 끓인 것과 비교해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통조림 햄은 끓이기 전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치면 기름기가 빠져 국물이 한결 깔끔해집니다.
흔히 하는 실수 세 가지
첫째, 라면 사리를 처음부터 넣는 실수입니다. 면이 국물을 계속 빨아들여 정작 먹을 때는 국물이 반으로 줄고 면은 퍼져 있습니다. 사리는 국물이 충분히 우러난 뒤, 먹기 4분 전에 넣는 게 맞습니다. 둘째, 육수를 한 번에 다 붓고 오래 졸이는 것입니다. 부대찌개는 가공육에서 염분이 계속 우러나기 때문에 끓일수록 짜집니다. 처음에는 재료가 잠길 만큼만 붓고, 여분의 육수 200ml 정도를 따뜻하게 데워 두었다가 먹는 중간중간 보충하는 방식이 전문점의 운영법이기도 합니다. 셋째, 치즈를 팔팔 끓는 중에 넣는 것입니다. 치즈가 국물에 풀어져 탁해지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습니다. 반드시 불을 끈 뒤 잔열로 녹여야 국물 위에 부드럽게 얹힙니다. 간이 이미 짜졌다면 물보다 두부 반 모를 더 넣는 쪽이 국물 맛을 덜 해칩니다.
사리와 재료 변형
라면 사리 대신 넣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당면은 불리지 않고 넣으면 국물을 너무 먹으니 미지근한 물에 20분 불려서, 떡 사리는 라면보다 1~2분 먼저 넣습니다. 다진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100g쯤 양념 옆에 올리면 국물이 눈에 띄게 진해져 송탄식에 가까워집니다. 콩나물 한 줌은 개운한 맛을 보태 의정부식 방향으로 당겨줍니다. 소시지는 칼집을 어슷하게 두세 번 넣어야 안까지 국물이 뱁니다. 베이크드 빈스가 없다면 케첩 반 큰술에 설탕 한 자밤으로 단맛과 산미를 흉내 낼 수 있는데, 콩의 질감은 없지만 국물 맛의 방향은 비슷하게 잡힙니다. 치즈는 모차렐라보다 체다 슬라이스가 맞는데, 모차렐라는 늘어나기만 하고 국물에 녹아들지 않아 부대찌개 특유의 노르스름하고 고소한 국물색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김치는 반드시 잘 익은 것을 쓰세요. 부대찌개는 가공육의 짠맛과 기름이 국물의 뼈대라, 생김치를 넣으면 산미가 부족해 느끼함을 잡지 못합니다. 김치가 덜 익었다면 김칫국물이나 식초 반 큰술로 산미를 보태는 게 차선책입니다.
남은 국물에는 밥보다 우동 사리가 어울립니다. 라면 사리가 이미 들어갔던 국물이라 밥을 넣으면 텁텁해지기 쉽습니다.
남은 부대찌개 보관과 재활용
남은 찌개를 보관할 때는 면 사리를 먼저 건져내야 합니다. 면을 그대로 두면 밤새 국물을 다 빨아들여 다음 날 국물 없는 볶음이 되어 있습니다. 건더기와 국물만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하면 이틀은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고, 가공육이 들어간 찌개라 그 이상은 권하지 않습니다. 다시 먹을 때 물을 보태 끓이면 맛이 흐려지니, 국물이 부족하면 사골 육수를 반 컵 더하는 게 낫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국물을 자작하게 졸여 밥 위에 얹고 치즈를 새로 한 장 올리면 부대덮밥이 되는데, 재탕 찌개보다 이쪽이 더 맛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햄과 소시지를 건져 잘게 썰어 김치와 함께 볶음밥을 만드는 것도 정해진 마무리 코스입니다. 이때 밥은 고슬고슬한 찬밥을 써야 국물 밴 재료와 볶아도 질척해지지 않고, 마지막에 김가루와 참기름 반 큰술이면 따로 간할 필요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