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이 되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기온이 33도를 넘는 한낮에, 사람들이 펄펄 끓는 뚝배기 하나를 먹겠다고 삼계탕집 앞에 길게 줄을 서는 겁니다. 가장 더운 날 가장 뜨거운 음식을 찾는 이 역설적인 풍경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복날은 어떤 날인가

복날은 초복·중복·말복 세 번으로 나뉘어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찾아옵니다. 정확한 날짜는 해마다 조금씩 다른데, 절기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실제로 한 해 중 가장 덥고 습한 구간과 거의 겹칩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시절, 이 구간을 어떻게 버티느냐는 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복날을 "더위에 지친 몸을 챙기는 날"로 삼았습니다. 여름 내내 땀 흘려 일하느라 축난 몸에 모처럼 귀한 음식을 먹이는, 일종의 공식적인 보충의 날이었던 셈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달력에 박아둔 "몸보신 리마인더"에 가깝습니다.

왜 하필 닭이었나

복날 음식의 주인공이 닭이 된 데에는 꽤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소는 농사에 써야 하는 재산이었고 돼지도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가축이 아니었지만, 닭은 여름쯤 되면 봄에 깬 병아리가 딱 잡기 좋은 크기로 자라 있는, 서민이 가장 구하기 쉬운 고기였습니다. 여기에 인삼·찹쌀·마늘·대추를 채워 넣고 푹 고아낸 것이 삼계탕입니다. 흥미롭게도 지금 형태의 삼계탕이 대중화된 건 생각보다 최근인 20세기 중반 무렵으로, 그 전에는 닭백숙이나 개장국 계열의 음식이 복날 상에 더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복날 날짜는 어떻게 정해질까

삼복은 24절기가 아니라 절기와 천간을 조합해 정하는 날입니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 네 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가 지난 뒤 첫 경일이 말복이 됩니다. 경일은 열흘에 한 번 돌아오기 때문에 초복과 중복은 늘 10일 간격이지만, 말복은 입추와의 위치에 따라 중복에서 10일 뒤일 수도 20일 뒤일 수도 있습니다.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로 벌어지는 해를 '월복(越伏)'이라 부르는데, 이런 해는 복 기간이 길어 더위도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삼복 풍습 자체는 중국 진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것이고, 조선 시대 세시풍속 기록에도 복날이면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고 특별한 음식으로 더위를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열치열, 뜨거운 것으로 더위를 다스린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은 복날 문화를 관통하는 말입니다. 한여름엔 몸 겉은 뜨거워도 찬 것을 자꾸 먹어 속은 차가워지기 쉬우니, 오히려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데우는 게 낫다는 오래된 지혜죠. 뜨거운 국물을 먹고 땀을 한 바탕 쏟고 나면 이상하게 몸이 개운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겁니다. 요즘처럼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속에서 지내는 시대엔, 어쩌면 조상들 시절보다 이 지혜가 더 잘 들어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계탕 말고도 복날 메뉴는 많다

복날 = 삼계탕 공식이 워낙 강력하지만, 선택지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 닭백숙·닭볶음탕: 인삼이 부담스럽다면 담백한 백숙이나 얼큰한 닭볶음탕도 같은 "닭 한 마리"의 만족감을 줍니다.
  • 장어구이: 복날 시즌의 또 다른 줄 서는 메뉴. 고소하고 든든해서 삼계탕과 양대 산맥을 이룹니다.
  • 민어탕: 예로부터 여름 생선의 대표로 꼽혀온 민어로 끓인 탕. 서울·서해안 지역에서는 "복달임엔 민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 콩국수: 뜨거운 게 정 안 당기는 날의 반대편 선택지. 고소하고 시원해서 복날 점심으로 꾸준히 사랑받습니다.

"복달임"이라는 예쁜 우리말도 있습니다. 복날에 더위를 물리치려 특별한 음식을 먹는 일 자체를 가리키는 말인데, 메뉴가 꼭 삼계탕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계탕 한 그릇을 더 맛있게 먹는 요령

기왕 줄 서서 먹는다면 제대로 먹는 법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삼계탕은 소금 간이 거의 안 된 채로 나오는 집이 많으니, 처음부터 소금을 다 풀지 말고 국물을 몇 술 먼저 맛본 뒤 조금씩 간을 맞추는 게 안전합니다. 닭은 다리부터 발라 먹고, 뱃속의 찹쌀은 마지막에 국물에 풀어 죽처럼 떠먹으면 한 그릇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곁들여 나오는 인삼주는 식전에 마시는 것이 정석이고, 깍두기 국물을 국에 살짝 섞어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격은 지역과 가게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 서울 기준 한 그릇에 만칠천 원에서 이만 원 안팎이 보통이고, 전복이나 낙지를 더한 특삼계탕은 이만오천 원을 넘기도 합니다. 복날 당일 점심시간의 유명한 집은 30분에서 한 시간 대기가 기본이니, 줄이 싫다면 오전 11시 전에 가거나 아예 복날 하루 이틀 전후로 비껴가는 것도 요령입니다.

집에서 끓인다면

외식이 부담스러운 해에는 집 삼계탕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삼계탕용 영계 한 마리에 찹쌀 반 컵, 마늘 대여섯 쪽, 대추 두어 개면 기본이 갖춰지고, 손질된 재료와 육수팩이 함께 든 삼계탕 키트를 쓰면 준비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압력솥이면 25분 안팎, 일반 냄비면 한 시간쯤 푹 끓이면 됩니다. 실패 포인트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찹쌀을 닭 배에 너무 꽉 채우면 익으면서 불어나 속까지 안 익고, 물을 너무 많이 잡으면 국물이 밍밍해집니다. 찹쌀은 배의 3분의 2만 채우고 물은 닭이 잠길 정도에서 시작하는 게 안전합니다. 한 마리 값으로 두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으니, 복날 물가가 부담스러운 해일수록 집 뚝배기의 가성비가 빛납니다.

한 그릇에 담긴 여름나기의 지혜

복날 삼계탕 한 그릇에는 냉방 없던 시절의 생존 전략과, 구하기 쉬운 재료로 최선의 한 끼를 만들던 서민의 지혜와, 더위를 음식으로 함께 넘기던 공동체의 리듬이 담겨 있습니다. 올여름 복날엔 줄 서서 삼계탕도 좋고, 장어도 민어탕도 콩국수도 좋습니다. 뭘 먹을지 고민된다면 — 그 고민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복날 풍경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