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지 감이 안 잡히는 날 결국 손이 가는 건 김치찌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끓이면 식당의 그 진한 맛이 안 나서 김치 탓을 하게 되는데, 경험상 김치보다는 볶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저도 예전엔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다가, 고기와 김치를 먼저 충분히 볶는 것 하나 바꾸고 나서 맛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김치찌개 자체는 김치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음식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봄여름에 쉬어버린 김치를 버리지 않고 기름에 볶아 물을 붓고 끓여 먹던 데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돼지고기가 흔해지면서 기름진 맛이 신김치의 산미를 눌러준다는 조합이 널리 퍼져 지금의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국민 메뉴가 됐습니다. 참치나 꽁치, 스팸을 넣는 변형도 결국 이 구조 위에 재료만 바꾼 것입니다.
재료 (2~3인분)
- 잘 익은 신김치 2컵 + 김칫국물 3~4큰술
- 돼지고기 찌개용(목살 또는 앞다리살) 200g
- 두부 반 모, 대파 1대, 양파 반 개, 청양고추 1~2개
- 쌀뜨물 600ml (맹물이나 멸치 육수로 대체 가능)
양념은 고춧가루 1큰술, 국간장 1큰술, 새우젓 0.5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설탕 0.5큰술, 식용유 1큰술, 참기름 1큰술입니다. 간의 축은 새우젓입니다. 소금으로 맞추면 짠맛만 올라가는데 새우젓은 국물에 깊이가 생깁니다.
끓이는 순서
- 김치는 먹기 좋게 썰고, 두부와 양파는 도톰하게, 대파와 청양고추는 어슷하게 썹니다.
- 냄비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를 먼저 볶습니다. 겉면이 익으면 신김치와 설탕 0.5큰술을 넣고 김치가 나른해질 때까지 3~5분 달달 볶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아끼면 나중에 아무리 오래 끓여도 그 맛이 안 납니다.
- 쌀뜨물과 김칫국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입니다. 쌀뜨물의 전분기가 국물을 진하게 만들고 잡내도 잡아줍니다.
- 끓어오르면 고춧가루, 다진 마늘, 국간장, 새우젓을 넣고 중불로 줄여 10~15분 뭉근하게 끓입니다.
- 두부, 양파,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3분 정도 한소끔 더 끓인 뒤 불을 끕니다.
고기 부위는 무엇이 좋은가
정석은 목살입니다.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이 좋아 오래 끓여도 퍽퍽해지지 않습니다. 앞다리살은 더 저렴하고 담백한 대신 끓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이 뻣뻣해지니 큼직하게 썰어 넣는 편이 낫습니다. 삼겹살을 넣으면 국물이 확실히 고소해지지만 기름이 많이 떠서 호불호가 갈립니다. 저는 평일엔 앞다리살, 주말에 여유 있게 끓일 땐 목살을 씁니다.
김치 상태에 따라 이렇게
같은 레시피라도 김치 숙성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덜 익은 김치라면 볶을 때 식초 1큰술로 산미를 보태고, 너무 신 김치라면 설탕을 조금 더 넣어 신맛을 잡으세요. 김치가 어중간하게 익었을 때는 김칫국물을 넉넉히 넣는 쪽이 낫습니다. 국물 간이 부족하면 국간장이 아니라 새우젓을 반 티스푼씩 추가하는 게 안전합니다.
맛이 밍밍할 때 점검하는 순서
끓여놓고 맛을 봤는데 어딘가 허전하다면, 무작정 간을 더하기 전에 순서대로 점검해보세요. 첫째, 신맛이 부족한지 봅니다. 김치찌개의 뼈대는 산미라서, 신맛이 안 받쳐주면 아무리 간을 해도 밍밍합니다. 식초 반 큰술이나 김칫국물 추가로 해결됩니다. 둘째, 짠맛이 아니라 감칠맛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때 소금이나 국간장을 더 넣으면 짜기만 한 찌개가 되니, 새우젓 반 티스푼이나 멸치액젓 몇 방울로 채우세요. 셋째, 기름기가 부족한 경우입니다. 고기 양이 적었거나 살코기 위주였다면 국물이 겉돌게 되는데, 마지막에 참기름 반 큰술을 두르거나 다음번엔 고기를 볶을 때 기름을 넉넉히 쓰는 걸로 보완됩니다. 이 셋을 다 채웠는데도 얕은 맛이라면 답은 시간입니다. 불을 끄고 30분 뒀다가 다시 데우면 김치의 산미와 고기 기름이 어우러지며 한층 깊어집니다.
참치와 스팸은 넣는 타이밍이 다르다
같은 김치찌개라도 부재료에 따라 순서가 바뀝니다. 참치는 돼지고기처럼 처음부터 볶으면 살이 다 부서지고 비린 기름만 남으니, 김치만 기름에 볶아 국물을 낸 뒤 마지막 5분에 기름을 반쯤 따라낸 참치를 넣는 게 맞습니다. 캔에 든 기름을 전부 넣으면 국물이 느끼해지고, 전부 빼면 참치 특유의 고소함이 사라지니 절반이 적당합니다. 스팸은 반대로 앞 단계에서 김치와 함께 볶아야 겉이 살짝 눌리면서 짭짤한 감칠맛이 국물에 배어납니다. 다만 스팸 자체가 짜기 때문에 새우젓을 절반으로 줄이고 마지막에 간을 다시 봐야 합니다. 꽁치 통조림은 참치와 같은 타이밍에 국물째 넣되 청양고추를 하나 더 넣어 비린 기운을 눌러주면 됩니다.
보관과 재활용
남은 찌개는 두부와 대파를 건져낸 뒤 냉장 보관하는 게 좋습니다. 두부는 국물 속에서 하루만 지나도 구멍이 숭숭한 스펀지 식감이 되고, 대파는 뭉개지며 국물을 탁하게 만듭니다. 건더기를 정리한 찌개는 냉장에서 2~3일이 한계이고, 다시 먹을 때는 반드시 한소끔 팔팔 끓여야 합니다. 이틀 안에 못 먹을 양이면 국물과 김치만 지퍼백에 담아 냉동해두세요. 다음에 고기와 두부만 새로 넣고 끓이면 처음 끓인 것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국물이 졸아 짜진 찌개는 물을 붓기보다 씻은 라면 사리나 우동 면, 떡국 떡을 넣어 간을 흡수시키는 쪽이 맛을 안 해칩니다. 마지막으로 국물이 조금만 남았다면 밥과 모차렐라 치즈를 넣고 볶아 김치죽 아닌 김치리소토풍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짠맛이 치즈의 고소함과 만나 남은 국물 처리라기엔 과분한 한 그릇이 됩니다.
밥은 갓 지은 흰밥이 제일이고, 남은 찌개는 다음 날 라면 사리를 넣어 끓이면 한 끼가 또 나옵니다. 오히려 하루 지난 김치찌개가 더 맛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김치와 고기 기름이 밤새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